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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라는 배의 이름처럼 세월이 지나도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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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마음이 아프네요......하늘나라에서도 행복하길 바랍니다 .세월호 참사 잊지 않겠습니다.행복하세요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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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14년때 중학생이였습니다. 정말 그 날 믿고싶지 않은 일들이 일어난걸 생생히 기억합니다. 꼭 잊지 않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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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이날이 돌아왔네요. 전 그날 학교에서 모두 구출했단 소식을 들었어요. 그런데 아니였죠. 전 그날을 아직도 기억해요. 배가 가라앉고 언니오빠들이 죽어가던 그날을요. 전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몇번이고 바랍니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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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저는 어리고 어린 초등학교 3힉년 학생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어느때와 다름없이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몰랐던 어느 곳에서 차마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고 그 곳에서는 앞으로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었을 고등학생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날 그 추운 바다에서 앞으로의 밝은 미래가 아닌 당장의 위험을 느껴야 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당시 10살 이었던, 그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제가 어느덧 16살이 되었고 1년후면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됩니다. 벌써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때 그 학생분들은 지금쯤이면 대학생활을 즐기고, 누군가는 일을 하고, 한창 길거리를 돌아다닐 20대였겠죠. 하지만 그 일이 있고 남들처럼 20대 청춘을 보내지 못하고 떠났다는 것이 정말 얼마나 슬플지, 얼마나 절망스러웠을지, 상상할 수 만큼 두려웠을거라는 생각이듭니다. 앞으로의 미래를 꿈 꿀수 없다는 사실은 정말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그 날의 희생자분들과 유가족분들의 고통은 절대 잊어서는 안됩니다.절대 그 날을 잊지 않겠습니다.그 날의 희생자분들을 잊지않겠습니다부디 그곳에서는 누구보다 밝은 빛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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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속보로 접했던 너희들의 소식, 전원구출이라는 오보로 다시 접한 속보, 그걸 보고 안도한 상태로 야자를 끝내고 집에 와보니 엄마가 오열하고 계셨던 게 기억에 선명해.사망 몇명 실종 몇명 울음바다인 뉴스를 다시 보면서 이게 무슨 일이지 싶어 어안이 벙벙했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너희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것 뿐이라 너무 답답하고 슬펐어.6년이 지난 지금도 너희를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 나랑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대학생이 되어 즐거운 캠퍼스 라이프도 즐기고, 어제 치뤄진 선거에서 투표도 했을거고. 맛있는 거 좋은 거 접하면서 행복한 미래를 그려갈 수 있었을 텐데.너희는 멈춰있는데 나만 자라고, 늙어갈 이 상황이 너무 미안해. 6번째로 맞는 4월 16일이지만, 여전히 너무나도 아프다. 남은 건 여기 남은 우리의 몫으로 풀어낼테니 너희는 꼭 행복하게 지내줬으면 좋겠어. 절대 잊지않을게. 걱정말고 행복해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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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에서 너희들이 거의 구해졌다는 뉴스를 보고 얼마나 기뻐했는데 ㅠㅠ 아이들아 너희들의 부모님을 하늘나라에서 지켜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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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유독 보고싶다. 그날.. 그리고 그주.. 미안해..오늘 유독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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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끝나고 16일이 왔네요. 생각나서 또 찾아왔어요. 그날 저는 초등6학년 애들을 데리고현장체험학습을 갔었죠. 점심시간쯤 동료 선생님이 깜짝 놀라며배가 가라앉았다 해서 큰일이다 싶었는데 기사를 쭉 보더니 전원 구조됐다더군요. 다행이다 안도하며 얘기 나눴던 기억이 생생해요. 퇴근 하며 라디오를 듣는데 전원 구조가 아니라네요?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집에 후다닥 와서 티비부터 켰는데..아니 그 큰 배가 옆으로 누워있는데주변은 왜 통통배 몇대가 전부이며그 많은 사람은 이미 구한건지 사람은 몇명 보이는데 헬기 한두대로 한명씩 옮기고 있고...처음엔 이미 구조하고 끝나가는 상황인가 했는데곧이어 믿기 힘든 내용...뉴스로 보며 황망해서 새벽내내 뉴스만 틀어놓고 하염없이 보고 있었어요...아이들도 안타깝고 선생님들 생각도 많이 나요. 나도, 그 상황이었다면 아이들을 지킬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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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만 샹각하면 눈물이 나고 몸이 떨립니다. 다시는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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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4월16일...세월호가 어느덧 6주년이 되었습니다..4월16일.. 곧 어른이 될나이에.. 생각지도 못한..사고4월16일 기억하고.. 잊지않을것입니다..예쁜 꽃 4월이 피는..꽃도 함께 보지 못합니다..세월호의 안타가움을 잊지말고우리 사회는 더 단단해져야되고..우리는 변해야됩니다..이런 사고는 다시 일어나지 않아야됩니다..사랑해요..잊지않을께요..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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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당시에는 나이가 어려 그냥 그런가보다 했었습니다. 히지만 지금 다시 되돌아보니 엄청 끔찍한 사건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절대 잊어서는 않되고, 다시 일어나서도 않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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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주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절대 잊지 않겠습니다.무엇보다 죄송한 마음이 더 크고 보고싶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 당시 뉴스로 접하면서 기도하고 기도했습니다 .. 눈물만 흐르고 할 수 있는 건 오직 구조를 기다리고 지켜보는 것 뿐이였습니다. 그 곳에서는 부디 행복하시길 바랍니다..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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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않고 기억하고 있어요. 더 나은 세상이 되도록 노력할게요. 미인하고 또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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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날의 그들의 고통을 또, 구해달란 아우성을 느끼지도, 듣지도 못하였습니다.하지만 그날을 꼭 잊지않고 살아가면서더 이상 그 아픔을 겪지 않도록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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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날을 기억 합니다.죄송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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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주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마음에 담아두도록 하겠습니다.그날 만 생각하면 문득 마음이 울컥 해지네요. 꼭 잊지 않겠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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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4.16 우리는 많은 사람을 잃었습니다. "세월호"라는 배에서.... 행복할 것 같았던 수학여행을 가는 배 안에서, 그런 일이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요... 경찰이 조금만 더 일찍 왔어도 더 많은 생명을 살렸을 겁니다. 그 시각, 정부는 아무런 대책 없이 가만히 있었습니다.선장이란 사람은 음주를 하며 잠을 자고 있더군요.대통령이란 인간은 보톡스를 맞고 있더군요.기가 막히네요...4년 전 오늘, 우리는 많은 생명을 잃었습니다. 살릴 수 있었습니다. 모두는 아니여도, 대부분은 가능했습니다. 잊어서는 안되고, 잊으려고 해서도 안됩니다.?Remamber 2016.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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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과 같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대학이라는 두글자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대고, 또 한편으로는 설렙니다. 같은 나이임에도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겨우 이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 나이엔 이 정도 생각에 그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들은 한 나라의 무능함으로 인해 죽음에 대한 생각,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두려움에 빠졌을 것입니다. 고등학생은 아직 많이 어립니다. 엄마아빠에게 투정도 부리고 싶은 나이입니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안기고 싶은 나이입니다. 어린 그들에게 너무 모진 생각들을 하게 했습니다.어릴 때 봤던 그때의 모습은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분명 시간은 흘러가는데, 아픔은 짙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평생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는 의미겠지요. 이상하게 이 날만 되면 저도 다시 2014년 4월 16일로 돌아가게 됩니다. 하루종일 그대들 생각이 나고, 추모곡 멜로디만 들어도 눈물이 납니다. 평생 머무르며 살아야 한다는 의미겠지요.우리의 잘못이니까요. 우리 모두의 잘못. 우리는 평생 잊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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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6번째 봄이.찾아왔네요. 잊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그날의 7시간을.저는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습니다. 단원고와 꽤 가까운 초등학교에 재학 중이었고, 평범히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런 나날들이었어요.그날은 달랐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돌어오면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시던 엄마가, 대뜸 너희 학교에 단원고로 진학한 언니오빠들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는 사람이 없었기에 되묻자 단원고 2학년 재학생 분들이 탄 배가 침몰했다는 뉴스보도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잠시.뒤 전원 구조라기에, 엄마와 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행이라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전 그 보도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꿈에도 몰랐습니다."단원고 학생 전원구조"이러했던 보도는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뉴스 화면에는 멈춰버린 생존자 수, 늘어나는 사망자 수가 반길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분명 멀끔히 보이던 배가 밑둥만 겨우 보일 때까지 밤새 뉴스보도는 계속 되었고, 마음을 졸이며 그 보도를 밤새 지켜보며 두 손을 맞잡고 있었습니다. 모두 모든 분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빌면서.다음 날 학교로 갔을 때는 온 층이 눈물바다였습니다. 배 안에 있었던 분들의 가족, 형제 자매, 친척, 지인. 많은 분들의 눈물이 학교를 적셔갔습니다. 슬펐습니다.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찌보면 제 3자인 제가 저 분들 앞에서 어찌.감히 슬퍼할 수 있을까. 슬픔을 짓누르며 그렇게 살아왔습니다.그렇게 살아오던 저는 어느새, 고등학교 2학년이셨던 분들과 같은 나이를 넘어 수험생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6년을 지내면서 드러났던 진실에 함께 분노하고, 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의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을 들으면 잘못 된 말씀이라고 목소리를 내며 6년을 살았습니다. 아직까지도 가슴이 아린데, 가족분들은 오죽하실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오늘 새벽 12시. 사실은 오늘이 되기 전부터 차분해지고, 조용해지던 절 들여다보니 이제 알겠습니다.참으로 슬펐습니다. 또 아팠습니다.그러나 온전히 티낼 수는 없었습니다.어엿한 성인으로. 누군가의 아내, 남편으로. 누군가의 자식으로 반짝이는 생들을 살아가야했을 분들이 없다는 것. 그 사실이 너무나도 짙은 슬픔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잊지 않는다고 하고 이따금씩 가슴 한 켠의 아픔을 잊고 살았던 것이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벌써 6번째 봄이 왔습니다. 그냥 이 말을 하고싶었습니다.푸르렀던 많은 분들이, 더이상 아프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곳에선 언제나 반짝이는.웃음이 가득한 날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늘 기억하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청춘으로 남은 모습들을 대신해 부끄럽지 않도록 제 할일을 열심히 하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그렇게 약속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