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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글 쓰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 당시에도 마감에 쫓기고 있었습니다. 함께 일하는 출판사에 벌써 몇 년째 소설 원고를 드리지 못했는데 드디어 완성할 수 있을까 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아침에 아내로부터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가려고 타고 가던 배가 침몰했다는 얘기를 듣고 매우 놀랐습니다. 다행히 전원 구조됐다믄 얘기를 들었으나 생중계 방송 화면 앞에서 떠날 수 없었으며 실제로는 모두가 구조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고 가라앉는 배 안에 사람들이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눈앞에서 수백명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Sns와 tv로 계속해서 상황을 주시하며 기도했습니다. 밤에도 잠을 자지 못하고 계속해서 아내와 세월호만 지켜봤습니다. 이후 거의 한달 간이나 그 여파가 지속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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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푼이라서...7시간을 멈췄나...7칠한 여인아.7백년을 씹어먹어도 시원치않을7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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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엔 별 일 아닌 줄 알았습니다. 대학원에 다니던 저는 그날도 적성과 맞지 않는 공부 때문에 고뇌하고 있었습니다. 머리를 식히려고 친구 몇 명과 산책을 나와서 학교 연못 앞 벤치에 누워 하늘을 보았습니다. 옆에서 친구가 세월호에 탄 사람들의 구조가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을 했고, "상황이 심각한가보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후 상황은 더 심각해졌습니다. 지금도 그 날 그 시간동안 내 고민만 했던게 죄송스럽습니다. 팔자 좋게 벤치에 누워 하늘이나 보던 제가 부끄럽습니다. 박근혜와 그 부역자들은 세월호 7시간을 직접 밝혀야 합니다. 더이상 스무고개는 하지 마십시오. 세월호 뿐 아니라,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나라를 만들었는지, 자살율과 산업재해사망율 전세계 1위인 나라를 만든 그 수많은 시간들에 대해 해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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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그 해에 저는 휴직 중이였고, 그 주에는 월요일부터 허벅지 근육에 문제가 생겨 정형외과에 물리치료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집에 TV가 없던 저는 오전 내 무슨일이 일어난지 모르고 있었고, 점심시간이 지나 병원에 가서야 대기실에 대형벽걸이 TV를 통해 세월호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퀴벌레가 툭툭 튀어오르는 끔찍한 느낌 속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이패드로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계속 보며 다른일을 못하며 그날을 보냈습니다. 평소 거의 본 적이 없었는데, 연일 계속되는 뉴스를 몇일동안 보고 또 보고, 울고 또 울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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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화창한 4월 수요일, 외근 나갔다가 회사로 돌아가던 오전 10시에 처음 뉴스를 보았습니다. 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이 많이 타고 있는 여객선이 가라앉았고, 전원 구조 예정이라는 뉴스를 보고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회사로 가는 발을 재촉했습니다. 애들이 많이 놀랐겠네. 일반 승객들도 있을텐데 배가 참 크네? 이런 생각을 하며 회사로 돌아와서 점심을 먹고 내가 본 전원구조가 오보라는 걸 알았습니다. 설마 배에 남아있진 않겠지, 아직 집계되지 않은 애들이 있겠지, 저 많은 사람들이 아직 배에 있진 않을거야..... 하는 생각은 점점 멀어져갔습니다. 아직도 기억합니다. 4월 16일 수요일 10시, 처음 세월호 사고 소식을 보았던 그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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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저는 예정되어 있었던 수학여행 생각에 들떴었습니다. 제주도에 가면 무엇을 할지 행복한 상상에 빠져 있던 저를 건져낸 것은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생 언니 오빠들이 탄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전원 구조되었다는 것이 오보라는 것이 오보이기를 믿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는 TV에서 세월호가 가라앉는 모습을 보며 침통해하고 계셨고 저는 충격에 한동안 멍하게 서 있었습니다.수학여행이 취소되었다는 것보다 언니 오빠들 대다수가 죽었다는 것이 더 쓰라렸습니다. 기부금을 내기도 했고 노란 리본을 가방에 달기도 했지만 2년이 지난 지금도 그 쓰라림을 잊은 적은 없습니다.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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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역시 저는 한국에 없었습니다. 오랜 해외생활로 그날 그날의 뉴스, 사건사고를 바로 듣지는 못하지만 그날은 너무도 큰 일이었기에 알고 듣고 보고....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더욱이 아직 어린 아이들이었기에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아이를 잃은 부모를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응원하겠습니다. 그리고 분노하겠습니다. 이 땅의 정의와 믿음이 승리하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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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여느날과 다름없이 출근해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웅성웅성 직원들이 세월호 뉴스를 하나 둘 얘기하기 시작했고 함께 인터넷과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면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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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들려 온 비보에 아무것도 못하고 티비만 바라 보고 있었습니다. 머리가 하얘지고 무기력함에 몸만 부들부들 떨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안산의 지인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너희아이 어느학교랬지? "".....그 학교 아니라는 대답을 듣는데 대답하는 사람도 , 듣는 나도 울고 있었습니다. 우린 엄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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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서 사고소식을 접하고 안타까와하다 점심먹으러 나가 전원구조 소식에 주변 동료들과 잘됐다고 안심했었다.그러나 오보라는 소식에 또래 아이들을 둔 부모입장에서 너무나 안타까웠고 구조소식에 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했었다.고 정차웅군의 어머니가 내 친구와 고향 동창이어 장례식에 내려간다는 연락도 받고...국가의 너무나 무력한 모습에 부모님만큼은 아니겠지만 너무나 분노했고 지금도 분노하고 있고.생명 앞에 이념을 내세워 모면하려는 떨거지 무리들은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그것이 아이들에 대한 우리들의 최소한의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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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을 쓰려니 코끝이 찡하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왜죽어야 하는이유도 구조해주겟지 하는 생각으로 서서히 사라진 우리에 아들딸들 지금도 울부짓고 잇는 부모님들 한이 되어 가슴에 커다란 쇠덩이를 달고 거리로 날설수 밖에 없는 그분들 아니 우리에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원인을 꼭 밝혀내고 원인자 처벌을 해야한다 꽃따운 18세에 서서히 고통속에 얼마나 무섭고 고통 스러웟을까 그러고도 뻔뻔히 내가 무얼 잘못햇는대 하는 악마들을 꼭 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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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학교는 체력검사를 하고 있었다. 아이패드를 통해 뉴스를 시청하면서 눈물을 흘렸고 그 무능함에 분노가 일어났다. 가만이 있으라니, 이정부는 무엇이든지 가만있으라한다. 그러면 좋겠지만 가만 있지 않겠고, 원통함과 억울함이 가실 때까지 기억하겠다. 진실이 밝혀질때까지 함께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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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직장에서 일을 하는데 친구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뉴스를 보는데 배가 가라앉고 있다고..직장이 병원인 지라 대기실로 뛰어가 티비를 봤는데 그때 당시에는 다 구했다고 하는 기사가 나와서 다행이라고 생각 했습니다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고,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흐르고 배가 가라앉는 순산을 허무하게 바라보았습니다그날을 잊은 사람들은 거의 없을겁니다너무나도 슬펐고 안타까웠고 무기력했던 그날의 시간, 우리는 모두 기억하는데 전혀 기억을 못하고 기록이 없다고 하니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이 화가 납니다 하루 빨리 책임다 처벌이 되길 기도하고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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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고 있다가 TV를 봤습니다.TV 우측 상단 전원구조라는 글과 함께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이 탔던 배가 침몰하였으나 전원구조했다는 내용이였습니다. 같이 밥을 먹던 친구에게 "다행이네, 애들 수학여행가다가 먼일이고, 제대로 못 놀고 와서 아쉽겠다" 하며 밥먹고 놀다가 다시 집에 갔습니다. 그런데 다시 TV를 틀었을 때 TV 속 우측 상단에 다른 글이 적혀있었습니다. 구하지 못했다고 아이들이 갇혀있다고...... 그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켜만 봐야겠던 제가 너무 싫었습니다. 무능한 어른이 되지 말아야겠다.....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4.16 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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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11시 쯤에 폰으로 인터넷 뉴스에 들어갔더니 세월호 뉴스가 속보로 떠 있었습니다.그래서 DMB를 틀었더니 구조 상황이 중계가 되고 있었습니다.그리고 늘어나는 사망자 수를 보며 마음이 아팠고 더 이상 사망자 수가 없기를 바라고 바랐습니다.그 날 저녁 친구랑 식당에 갔는데 식당 TV에서 세월호 구조 상황이 계속해서 보도되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마음이 아팠고 기적이 있기를 바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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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저는 평소처럼 분주한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죠. 동료직원 한 분이 인터넷 뉴스를 보고 수학여행 배가 가라앉고 있다고 했어요. 아이고 가슴 설레며 준비했을 여행인데 아그들 안됐다는 생각만 했죠. 당연히 모두 구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구명조끼도 입었으니 배밖으로만 나가면 인근 배들이나 헬기가 구조하면 되니까요. 혹 갇혔다 해도우리나라 특수부대나 해경의 수준이 있는데 설마 생각도 안 했어요. 그런데 결과는 어이가 없었죠. 눈물밖에 안 나왔어요. 게다가 책임지는 정부도 없고 고작 내놓은 대안이 안전교육 강화와 단체수학여행 금지라니. 본질 개혁 없는 시늉정책도 정책인지 묻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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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수업이라 여유롭게 준비하면서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속보로 세월호소식을 접했습니다. 구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구명조끼 입고 배밖으로만 빠져나오면 구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전원구조했다는 소식도 접하고 정말 다행이라고 안도했지요. 그런데 말도안되는상황이 일어났지요. 정말 위급한상황에선 구명조끼 입고 바다로 나오면 될거라 생각했는데.. .. 지금 구명조끼라는 이 단어가 왜이리 답답하고 슬플까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들 그렇겠지요? 그 날 뉴스만 보다가 잠들었습니다. 어린친구들과 그들의 가족은 이제 어찌하냐고 울면서 잠들었습니다. 정말 슬퍼했고, 걱정했는데 일상으로 돌아가니 점점 잊고 지냈습니다. 그리고 언론의 선동과 과장, 왜곡 보도등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집니다. 노란리본만 보면 눈물이 터져 나옵니다. 배안에서 나라가 구해줄거라 믿었던 사람들, 그리고 뉴스를 보며 나라가 구해줄거라 믿었던 국민들 ... 우리 모두 배신당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숨기려고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언론을 장악했는지 진실이 밝혀질날만 기다리고있습니다. 국민을 등진 국가가 하는말만 믿어버린 제 자신이 했던 생각때문에 괴롭고 힘듭니다. 미안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건 기억 또 기억하는것이겠지요. 잊지 않을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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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해진 기억때문에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케어일을 하면서 소식을 접했습니다.오락가락 하는 구조자의 수를 보며 안도를 하다가도 잘못된 집계라는 소리에 무너지는 마음을 느꼈습니다. 아무런 대응도 못하는 정부의 모습.정부 잘못이 아니다 잘못을 떠미는 모습.기다려 달라는 그 말들.무기력해지는 모습. 유가족 분들의눈물.7시간의 진상규명 꼭 밝혀져야 합니다.세월호 인양도 반드시 해야합니다.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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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이 나고 적어두었던 일기. 2014.04.28. 19:13 다른 것은 생각나질 않고 오직 16~7세의 단원고 2학년 아이들만 생각난다. 325명이 즐겁게 집을 나서서 고작 74명 생존. 249송이, 한참 부풀어 오르는 탐스럽고 싱그러우며 아름답기 그지없을 꽃송이들을, 이 4월에 찬란하게 빛을 발할 꽃송이들을 저 어둡고 찬 심연속에 묻어버렸다. 대한민국의 탐욕스럽고 추한 어른들이.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내내 눈물만 흐른다. 가슴을 도려내듯 아프고 사지가 벌벌 떨린다. 너무 고통스럽다. 나쁘다. 나빠도 너무 나쁘다. 인과응보, 자업자득. 이런 어휘가 통용되지 않는 사회 속에서 꽃송이들이 우수수 진다. 비바람도 없는데...... 가슴에 묻어두고 두고두고 저 어린 꽃송이들을 그렇게 만든 인간들을 끝까지 지켜보리라. 신의 이름을 빌어 악을 일삼는 자들의 종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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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 안에서 기사를 봤네요.. 버스안에 사람들도 다들 어쩌나... 하며 소근거렸는데...아무렇지 않은 그런날이었는데 기사하나만으로 기억이 다 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