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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로만 접했던 그날의 사건해줄수있는게 없었고마음아파서 뉴스조차 보기가 힘들었던ㅜㅜ안타까운마음을 계속 담고있었네요무너저가는 희망을 끌어안고두려움에 가득찬 작고 약한 아이들의 울부짖음을절대 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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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학교지각해서 더 늦게갈려고친구들 다 수업받을때 혼자 학교앞에잇는 분식점에서 주먹밥이랑 떡볶이먹으면서 분식점이모랑 티비본게기억난다 티비를보다가 갑자기 배가 흔들리고잇다고 시작해서 뒤집어지고잇다는 기사가나오고 별거아니겟지 하고여기고학교를들어갓다 생각보다심각한일이였고 반애들이랑 학생한명한명이구출할때마다 반애들은 안심되엇구 집에돌아가서도 길거리에서도학교에서도수업시간쉬는시간에도세월호에대한이야기는끊어지지않앗고 지금2년이흐른지금도나는여전히 이야기를하구잇다 잊지말아요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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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9시 반 출출한 배를 채우려 집 앞 식당에 자리를 잡고 제육볶음을 주문했다. 둘러않은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TV를 향해 있었다. 제주로 가던 배 한 척이 서해 바다 한 가운데에서 침몰하고 있다는 뉴스였다. 영상 속에 배는 아직 가라앉기에는 한참 시간이 남아보였고, 이 정도 로 이슈가 된 사건이니 어련히 구조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선 오후가 될 때까지 뉴스를 찾아보지 않았다. 다시 식당을 찾아 자리에 앉았을 때야 그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이 아직 구출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그 많은 시간동안 도대체 무엇을 했길래! 지금이라도 구조되기를 기원했지만, 현실은 잔혹했다. 4월 16일. 그 전날도 그 다음날도 내가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날만큼은 아직도 눈 앞에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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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하루 종일 회사 업무로 메신저로 동료들과 대화하고, 점심을 먹고, 그리고 잠깐 차를 마시고..정말로 반복되는 그 많은 365일 중의 하루의 일과를 똑같이 보내고 있었습니다.사소하지만, 가족들과 나 자신의 미래를 위해 온전히 다 했던 7시간. 그리고 아이들이 미래에 가졌어야 할 그 7시간.왜 그들은 그 7시간을 자신들의 역사에서 지워야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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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는 고3이기에 공부하다 핸드폰으로기사를 봣는데 수학여행가던 세월호에서많은 나와 나이가 1~2살 적은 동생들이자가운바다에서 죽어가고있다는 소식을접하고 충격에 빠졌 습니다.지금도 생각나면 눈물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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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고 예정되 회의를 들어깄습니다. 회의에 모인 사람들이 걱정스런 말투로 아이들은 괜찮을지, 혹시아는 선생님이 계시지는 않는지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의 그 사람들의 불안한 얼굴표정, 걱정스런 낮은 목소리 하나 하나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슬프고 가슴이 미어지지만 잊혀지지 않는 기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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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이었던 내가 벌써 대학생이 됐어 애들아 시간이 멈춰버린 너희는 아직도 고등학생인데 나는 이렇게 대학생이 되었다 시간은 이렇게나 빨리 흘러가는데 우리 모두는 그 시간에 그 장소에 머물러 있어잊지 않고 모두 다 함께 그 잃어버린 시간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2년이 흐른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잊지 않을거야 계속 노력할게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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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기억을 잊을수가 없죠그 무기력함과 안타까움, 유가족의 절규와 대통령의 무책임한 대응언론의 오보와, 조적된 보도들....무엇 하나 의혹이 밝혀진것 없이 1000일이 가까워 오는 현실이 아직도 답답하기만 합니다.세월호 침몰과 구조 실패의 책임이 일개 구조정 정장에게만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해군 구조함 출동을 누가 막았는지미해군 구조요청을 누가 묵살하였는지왜 승객 구호조치 없이 선원들만 구조하였는지 밝히고 관련자들 처벌하여야 합니다.세월호 진상규명 없이 헬조선 대한민국의 미래는 달라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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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컴퓨터 창에서 처음 소식을 접했습니다.진도와 가까운 도시에 사는 관계로 세월호 소식은 더 눈에 들어왔어요제가 사무실 사람들에게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어요..솔직히 전하면서도 구출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을 줄 알았어요.잠시후 모두 구출했다는 뉴스도 나오구요.그리고 충격적인 소식!!!우왕좌왕 하는 뉴스...구출한 숫자와 배안의 숫자가 왔다갔다 보는 우리도 뭐가 맞는지 뭐가 진실인지 모르는 상황!!TV속의 세월호는 점점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이게 현실인지 영화인지 저렇게 큰 배가 순식간에(제가 보기엔 엄청 빨랐어요) 침몰되는게 가능한건지..벌써 2년 반이 지났는데 너무 생생하네요.요즘 TV에서 그 날을 기억못하시는 분들이 많던데 빨리 병원에 가 보셔야 될 거 같아요.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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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근무중 이였습니다.인터넷 실시간 검색에 세월호가 떴고세월호의 침몰 소식과 함께 단원고 학생들의 수학여행을 가고 있었고 전원 구조 됐다는 속보를 보고 얼마나 안도의 한숨을 쉬었는지 모릅니다.하지만 그건 오보였습니다.우리의 아이들이 차디찬 바닷속에 수장됐습니다.그때 제 아이들이 여섯살 다섯살.생때같은 아이들이 차이찬 바닷속에 있다는 뉴스를 듣고 눈물이 쏟아졌습니다.여섯살 딸아이가 언니 오빠들이 왜 그렇게 됐냐고했을때 이유를 설명해야했고,지금은 여덟살이 된 딸아이에게 왜 대통령이 하야해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해야합니다.이게 지금 우리가족이 사는 대한 민국의 현실입니다.그 안타까운 시간을 어떻게 잊고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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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다 무사할줄 알았다. 그래도 선진국이라는데...그 말을 믿었었다. 그래서 아무일 없을거라고 믿었고 그건 내 착각이었다.뉴스에서 계속 뉴스가 나오고 그 뉴스만 집중하던 때에 저널리즘 수업때 그 현장에 갔다오신 교수님이 우리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그렇게 끔찍한 현장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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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처럼 출근을 하고 속보로 뜬 뉴스를 보고 큰일이 아닐거라 생각하고 또... 곧이어 나온 전원 구조 뉴스에 왠일로 우리나라가 잘한일도 있구나 싶었던 그날.... 시간이 흐르고 오보 였다고 배가 완전히 가라앉았다고 하는 뉴스에 망연자실하던 기억. 내 아들일수 있었고 내 이웃의 아들이던 그 소중한 생명 하나하나에 지금도 눈물이 나는데... 오천만 국민이 함께 울고 함께 안타까움에 구조했다는 소식 한줄에 목말라 밤잠을 설치던 그시간... 왜 그들은 기억하지 못할까요? 기억하고 싶지 않거나 기억하는걸 알리고 싶지 않거나????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하염없이 인터넷 뉴스만 바라보던 그날의 7시간... 절대 잊지 않고 있을겁니다. 감추려하는 그들의 7시간도 결국은 다 밝혀지겠지요. 아직은 세상에 정의가 살아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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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어떻게 기억이 안나겠어요..? 평소 출근시간에 맞춰 출근준비 허둥지둥 서두르다가 접한 악몽같은 뉴스에, TV에서 눈을 떼지못하고 결국 지각했던 그 날을. 출근해서도 인터넷으로 상황 접하면서 종일 맘속으로만 발동동구르며, 오후경 아예 배가 침수시작되어 구조가 힘들다는, 도데체 21세기 대한민국, 멀쩡한 봄날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기다니, 꿈인지 생신지 믿을 수 없어 분노가 한숨에 섞여 연신 터져나오던 그 날을. 당시 승무원들,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대처, 구명조끼잆은 채 선체에 있으라는 방송 후 본인들은 탈출이라는 기가막힌 선장, 승무원들, 배를 버린 그 날을. 단 10여분만이라도 승무원이기를, 아니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300여명 대피시킬 수 있었던 상황에 버려버린 인.간.성., 그 자들은 그 날을 본인이 인.간.이 아니었던 날로 기억해야할것입니다.책임지지 않은 채 뒤에 숨은 자들, 모두 평생 적어도 그 하루는 덜 산걸로 기억해야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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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복귀를 아침일찍했다. 안성휴계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티비에서 세월호 속보가 나왔다. 금방 구해내겠지 싶었다. 그리고 나서 3시간 운전하고 집에 도착했고, 피곤에 지쳐 잠에 들었다. 눈을 뜨고 티비를 켜니 눈물이 나왔다. 아무도 구해내지 못했다.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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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 시절. 스터디원 5명과 함께 공부를 하고 있다가 사고 소식을 듣고 하루종일 휴대폰 DMB를 켜놓고 탄식했던 기억이 납니다. 혹시 지인 중에는 별일 없는지 일일이 전화와 메시지를 보내며 물었던 기억도 나고요. 처음 뉴스를 접했던 장소와 날씨, 심지어는 그날 점심으로 무엇을 먹었는지도 모두 기억이 나네요. 우리는 이렇게 기억이 선연한데 그 7시간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도 지려 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에 통탄할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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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날 성신여자대학교 수정관에서 영어회화 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모두 구조되었다는 오보 때문에 안심하고 수업을 들었지만 수업이 끝 난 후 학식당에서 친구들과 보게 된 기사는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래도 구하겠지, 무사하겠지 라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는 내내 기사를 찾아읽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온 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거의 잠겨가는 배와 텔레비전 오른쪽 상단에 적힌 터무니 없이 적은 구조자수였습니다. 저는 그 날을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제가 다 무서워서 하루종일 티비 앞에 앉아 겉옷도 벗지 않은 채로 눈물 흘리며 기도하고 맘 졸이던 것을 기억합니다. 저 아이들은 저 차가운 물 속에서 발버둥치고 있는데 저는 학교가 다니기 싫다고 투덜대고 한탄하던 제 어리석고 오만한 모습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잊지 않을겁니다. 잊지 못합니다. 잊은 사람들은 반성해야합니다. 처절하게. 얘들아 미안하다. 기억하는 것 밖에 해줄게 없는데 그조차 못하는 어른들이 있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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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서 10시쯤에 옆자리 동료가 여객선이 침몰하고 있데요 라는 얘기를 전해 들었을 때 그렇게 커다란 배면 침몰하는 것도 오래 걸릴테고 근해이기도 하고 모두 금방 구출될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점심 먹고 오후 쯤에 전원 구출 속보를 봤을 때도 당연하게 생각했었죠. 배에 대한 지식이 얼마 없어도 모두 구출되는 건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아직은 당연한 일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시간이 지났을까. 오보라는 소식과 300여명이 갇혀 있다는 뉴스를 보고 경악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 후 몇 일동안 단 한 명도 더 구해내지 못하고 펼쳐진 난리통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마지막 믿음까지 무너트렸습니다. 4.16은 그리고 그 이후의 몇일은 한 없이 잔인하고 잔혹한 희망고문의 나날들이었습니다. 온갖 비인간적인 행태와 거짓말들이 판치는 날들이었습니다. 그런 날을, 그런 날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사람 목숨보다, 자식 잃은 부모 심정보다 경제걱정을 더 하던 사람들은 잊을 수 있을지 몰라도 저는 못 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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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16일 선배들 수학여행소식에 마냥 부러워하며 수업을 하는도중 몰폰을 하면서 소식을 접하고 학교에서 수업도 안하고 미션스쿨이라 다같이 기도하며 살아돌아오길 기다리고있었습니다. 전원 구조라길래 안도했는데 오보... 그리고 나타나지않는 대통령에 우리나라의 현실을 깨달았습니다 수학여행이 모두 취소되고 수업을하는 와중에도 모두 걱정에 뉴스만 보고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언니오빠들과 함께탄 선생님,일반인들까지 구조되지 못한 모두가 떠나버려서 엉엉울고 아직까지 기억하면 눈물난만큼 우리나라 대통령에게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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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고1, 학교에서 언니오빠들이 차가운 바다속에서 사경을 헤메일때 저는 체육시간이었고, 뉴스를 보고 있었습니다. 전원구조되었다는 오보를 그대로 믿고 점심시간에 급식을 먹었고, 다시 교실의 티비를 트니 사망자, 실종자는 200명이 넘어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루종일 뉴스를 보며 언니오빠들의 소식에 애달파할때, 대통령 당신의 시간은 어디 가있었나요? 곧 스무살이 되고 투표권을 가질 나이가 될 열아홉인 지금, 이 나라에서 살기 싫습니다. 시국이 바로잡아지기전까진 "우리"나라라는 표현도 쓰고싶지 않습니다. 명심하세요 대통령님! 대통령 박근혜의 나라가 아닌, 내 나라 우리 나라에서 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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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울산으로 출장가던 아침 기차 안에서 뉴스로 접했습니다. 모두 구출했다는 뉴스를 보고 잠을 청했고, 출장지 도착 후 일을 마치고 저녁 뉴스에서 참사가 난 것을 알게되었습니다.당시 본인이 뭘 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거짓말 하는겁니다. 보통 사람들의 기억은 특정 사건과 연관이 되면 더 정확히 기억을 하게 됩니다.그 시간에 본인의 행동을 모른다라.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있습니다.그리고 국민이 알고 있습니다.제 가슴, 우리 가슴 속에 남아 영원히 기억될겁니다.